
[점프볼=최창환 기자] NBL(호주리그) 일정을 마친 후 한국에 돌아온 지 사흘. 이현중(25, 201cm)은 코트로 나섰다. ‘목표가 NBA라면 이렇게 쉬어선 안 되는데…’라는 마음으로 다시 농구화 끈을 묶었다. NBA 드래프트에서 떨어지고 서머리그에서도 예상보다 적은 기회를 받아 낙담할 법도 했지만,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모든 건 불가능하다…. 누군가 이루기 전까지!” 이현중은 오늘도 자신이 새긴 각오를 되뇌며 한국인 NBA리거 2호라는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됐습니다.NBL 진출 후 첫 시즌에 비해 두 번째 시즌은 평균 출전시간(17.2분→15.7분)이 다소 줄어들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즌을 치렀나?불평만 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경기는 계속 치러야 했다.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 ‘이현중을 왜 투입하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모든 걸 보여준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출전 기회가 들쑥날쑥해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다짐은 유지하면서 시즌을 치렀다.
늦었지만 우승을 축하한다. 2승 2패 상황에 서 5차전을 맞이할 때 선수들과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궁금하다.동기부여는 충분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5차전이라고 달라질 건 없었다. 서로를 믿고 마지막까지 해보자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일라와라는 저스틴 테이텀 감독 부임 이후 이기는 경기가 많아졌고, 2024-2025시즌은 파이널 우승까지 달성했다. 어떤 스타일의 지도자인가?굉장히 디테일하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어시스턴트 코치들의 얘기를 잘 수용한다는 점이다. 물론 감독은 자신마다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하고 책임도 떠안아야 한다.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분이 많지만, 테이텀 감독님은 코치님들의 얘기를 모두 들은 후 결정을 내리셨다. 만약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스스로 책임을 지셨다. 그러면서 코치님들,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슛 찬스라고 생각하면 계속 던지라고, 수비할 때는 리바운드 가담이랑 집중력을 조금 더 끌어올려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올 시즌 종료 후에는 또 다른 해외리그로 향하지 않았던 이유는?일단 NBL에서 파이널까지 치르느라 B.리그는 선수 등록 기간이 마감된 터였다. 지난 시즌도 일라와라가 4강에 진출해 B.리그에서 아슬아슬하게 뛸 수 있었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스스로 몸을 강하게 만들면서 한 단계 더 스텝업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한국에 들어왔다.
NBL에 이어 B.리그까지 뛴 지난 시즌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체력적으로 힘든 일정이었을 것 같은데?시즌이 조금 더 길어진 정도였을 뿐 체력적으로 힘든 건 없었다. 물론 리그 자체가 다른 만큼 모든 선수마다 훈련 방식, 시간 관리가 달랐지만 잘 적응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되다 보니 일본의 감독님, 선수들과 소통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다.
NBL에서 두 시즌을 치르는 동안 깨닫거나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면을 봤을 땐 몸싸움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고, 정교함도 생겼다. 두 시즌을 치르면서 수비적인 부분도 많이 발전했다. 인간적으로는 멘탈이 성장했다. 농구가 잘 풀릴 때는 누구나 걱정할 거 없이 잘 된다. 제일 중요한 건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다. 이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선수의 등급이 갈린다고 생각한다. 아직 부족하지만, 어떻게 해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 많이 배웠다.
구체적으로 경기가 안 풀릴 때는 어떻게 극복하려고 했나?1년 차 시절에는 주로 두 가지였다. 주야장천 슛 연습만 하거나 바닷가에 가서 푹 휴식을 취한 후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함께 돌아왔다. 돌아보니 제일 중요한 건 경기 중 어떻게 대처하느냐였다. 슈터여서 슛이 몇 개 안 들어갔을 때 어떤 자세로 임해야 다음 찬스에서 악영향을 받지 않을까에 대해 고민했고, 명상도 했다. 무엇보다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 스테픈 커리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관중이 많은 체육관에서 경기가 안 풀릴 때는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를 신경 썼다. 한국에 돌아온 후 요가를 정식적으로 배우면서 슛이 안 들어갔을 때 내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나?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계속 운동만 하고 있다. 매일 오전부터 운동하고, 월수금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요가를 병행한다. 요가는 호주에 있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 유튜브 보며 따라하는 정도였는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부상을 방지하고 있다. 주말에는 교회에 가거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것 같다.개인적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하는 게 더 힘들다. ‘목표가 NBA라면 이렇게 해선 안 되는데…’라는 생각에 불안해진다. 더 연습해서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NBA가 목표라면, 갈망하는 꿈이 있다면 건강한 욕심을 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온 후 사흘 만에 운동을 시작했다.
에픽스포츠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게 된 배경은?데니스 형(김병욱 에픽스포츠 대표)과 호주 아카데미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직접적으로 일을 함께하거나 연락을 자주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항상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해 주셨다. NBA에서 오랫동안 일하신 만큼 갖고 있는 지식도 많은 분이다. 그래서 종종 연락을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계약까지 맺게 됐다. NBA에서 퇴사하신 후 한국에 돌아와서 회사를 차리셨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나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궁극적인 목표로 삼
는 무대는 여전히 NBA인데 올여름은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6월 말쯤 미국으로 넘어가서 서머리그를 준비하는 데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 책이 나올 때쯤이면 미국에 있을 것 같다. 이전까지는 계속 훈련을 소화할 생각이다. 데니스 형이 시즌이 끝난 KBL 선수들과 픽업게임도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다. 덕분에 실전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도전을 응원하고 있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유혹은 없었나?나를 응원해 준 사람 가운데에는 없었다. 오히려 돌아오지 말라고 한다. 예전부터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호주 아카데미에 갈 때도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었기 때문에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부모님은 고등학생이었던 내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네가 가고 싶은 길이라면 그 길이 맞는 거야”라며 믿음을 주셨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책임감도 심어주셨다. 나는 내 자신을 믿고, 내가 걷는 길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응원해 주는 분들 역시 항상 내 선택이 맞다고 말씀해 주셨다. 유혹은 전혀 없었다.
경제적인 부분도 중요하지 않나?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농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NBA라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도전하는 것 자체가 나를 더 나은 선수로 몰아붙이고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래서 될 때까지 할 것이다. 도전하는 것은 손해가 없는 일이다. 그 자체로 나를 더 좋은 선수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계속 도전할 것이다. 당장 돈을 좇는다면 더 좋은 농구선수가 되길 포기해야 한다. 지금 나에게는 더 나은 기량의 농구선수가 되는 것이 경제적인 것보다 더 중요하다. 돈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을 하는 것이 내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처음으로 미국 무대에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새겼던 순간을 돌아본다면?
U17 대표팀에 선발되어서 미국 대표팀과 경기를 치른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농구 제일 잘하는 12명이라고 우쭐댔던 시절이다. 우리가 정말 잘 싸웠는데도 박살이 났다. 그때 ‘세계농구와 비교하면 한국농구와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 더 잘하는 선수들과 대결하며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해외에서 생활하는 동안 영어 공부는 어떻게 했나?이 부분도 부모님, 특히 어머님께 감사드린다. 어린 시절 영어유치원에 보내주셨고 5살 때 캐나다, 7살 때는 뉴질랜드와 미국에 갔다. 잠깐이나마 해외에 나갈 일이 있었던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접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농구하는 걸 반대하셨다. 한 가지 조건과 함께 허락하셨는데 그게 공부였다. 그래서 초등학교-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놓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농구만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영어 실력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배운 영어만으로 호주에 가니까 아무것도 안 들렸다. 공부하는 것과 실전은 확실히 달랐다. 말을 못 알아듣다 보니 3개월 정도 자체적인 왕따가 됐다(웃음). 이후 어떻게든 영어 자막과 소리를 접하려고 했고, 친구들이 말하는 걸 못 알아들어도 계속 듣고 또 들었다. 친구들이 어떤 단어를 많이 쓰는지 파악하다 보니 실전에서 쓰는 영어도 점진적으로 익힐 수 있었다.
농구만의 희열은 무엇인가?어릴 때부터 골 넣을 때 기분이 좋았다. 축구도 좋아했지만, 골이 많이 안 나오지 않나. 슛 들어갈 때, 특히 먼 거리에서 넣을 때 쾌감이 컸다. 부모님과 누나 모두 농구를 했기 때문에 나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 서머리그에서 좌절을 겪은 적도 있었다. 기회가 안 온 부분에 실망했다. 사실 많이 힘들었지만, 지나고 돌아보니 다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때 배운 점도 있었다. 이를 토대로 이번 서머리그에서는 더 잘 준비해서 기회가 왔을 때 잡고 싶다.
농구나 훈련 외의 취미는 없나?한국에서는 친구들과 대화하고 함께 식사하는 걸 즐긴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이기 때문에 직장이나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의 인생을 듣는 것도 재밌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도 저마다 힘든 게 있는데 이들의 인생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감사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을 수 있는 건 큰 축복이다. 하기 싫은데 일을 해야 하는 친구들도 있다. 물론 농구할 때도 하기 싫은 걸 해야 하는 상황이 있지만, 나는 축복받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 만날 때 아니면 종종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을 즐긴다.
게임도 2K 시리즈를 주로 할 것 같은데?레슬링, 피파 시리즈도 한다. 2K 할 때는 마이커리어 모드에서 만든 내 캐릭터로 즐긴다. 이름, 신체 조건, 포지션 등등 모든 걸 나와 똑같이 만들었는데 외형적인 부분만 흑인으로 설정했다. 흑인으로 캐릭터를 만들어야 드래그가 잘 어울리더라(웃음). 개인적으로는 헤어스타일이나 꾸미는 거에 관심이 없다. 머리가 붕 뜨는 편이어서 가끔 다운펌만 할 뿐 이외에는 집 앞에 있는 9000원 짜리 미용실에 가서 자르고 온다.
좌우명이나 영감을 받은 조언이 있다면?
‘Everything is impossible until someone does it’이란 말을 좋아한다. ‘모든 건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해내기 전까진’이라는 뜻이다. 나도 불가능한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내가 이루는 순간부터 가능한 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구를 팔에 타투로 새겼다. 등에는 성경 문구가 있다.
최준용도 “이현중, 여준석은 정말 대단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최)준용이 형도 큰 무대에 도전했다면 어디에서 뛰고 있을지 궁금하다. 역대급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팬들에게도 인사를 남긴다면?마음을 굳게 먹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갈 수 있지만 가족, 에이전트, 친구들, 팬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많은 분이 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때 많은 힘을 얻는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계속 도전할 것이다.
#사진_문복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