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최창환 기자]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너네도 떨어져라. 몽땅 망해라.” 벚꽃을 보러 간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내가 매년 봄마다 즐겨듣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사실 부럽다. 많이. 봄 농구에 초대받지 못한 네 팀의 속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저마다 청사진을 그리며 시즌을 맞이했지만 플레이오프에 못 오른 팀들에겐 어떤 변이 있었던 걸까.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5월호에 게재됐습니다.신기루처럼 사라진 지난 시즌의 영광
원주 DB 23승 31패 승률 .426 7위
“삼성이 잘한 거야, DB가 못한 거야?” 지난해 10월 19일, 원주 DB의 시즌 첫 경기를 지켜본 많은 관계자가 이구동성으로 남긴 말이었다. KBL컵 우승을 차지,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던 DB의 첫 경기 모습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서울 삼성에 88-83으로 승리했지만 리바운드(29-38), 어시스트(19-20) 모두 삼성보다 적어 모두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경기는 DB가 올 시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승패 마진 +1을 기록한 날로 남았다. 시즌 첫 경기 승리 후 7연패 늪에 빠진 DB는 이후 안정감을 찾지 못했다. 2라운드 첫날 10위로 내려앉는 악몽까지 겪었다.
단순히 김종규, 박인웅의 부상 공백을 이유로 삼기엔 설득력이 떨어졌다. 이선 알바노, 디드릭 로슨을 축으로 가공할 화력을 뽐냈던 이전 시즌과 달리 공격도 수비도엇박자를 그렸다. 시즌 초반 한상민 코치와의 계약을 해지하며 내부에 경각심을 불어넣으려 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치나누 오누아쿠는 여전히 안하무인이었고, 마음을 다잡은 듯했던 유현준은 또다시 은퇴를 선언했다. 급기야 김주성 감독은 작전타임 도중 알바노에게 욕설을 퍼부어 시청자들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바람 잘 날이 없었지만, DB는 전력 안정화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김주성 감독을 지원했다. 복귀 시점에 대한 기약이 없었던 김종규를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해 정효근을 영입했고, 대체 외국선수 오마리 스펠맨도 영입했다. 그럼에도 DB는 반등하지 못했다. 힘겹게 6위 싸움을 이어갔지만, 순위 싸움의 분수령이었던 4~6라운드 10승 17패에 그쳤다. 같은 시기 경쟁 팀 정관장이 18승 9패를 거둔 것과 비교하면 더욱 대조를 이루는 행보였다. 결국 홈에서 치른 정규리그 최종전이자 ‘6위 결정전’에서 정관장에 플레이오프 티켓을 넘겨주며 시즌을 마쳤다.
김주성 감독의 커리어를 논하면 비슷한 사례로 언급되는 인물이 있다. KCC의 프랜차이즈 스타 추승균이다. 영구결번된 원클럽맨 출신이자 코치-감독대행을 거쳐 감독 데뷔 시즌 정규리그 우승, 그리고 2년 차 시즌 플레이오프 탈락까지…. 판박이나 다름없었다. 추승균 감독은 3년 차 시즌에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지만, 이는 추승균 감독이 KCC에서 치른 마지막 플레이오프가 됐다. DB에게도, 김주성 감독에게도 다가올 오프시즌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이유다.
정규리그 최종전 직후, 김주성 감독의 코멘트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열심히 뛰어줬다.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똘똘 뭉치려는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 다사다난했던 시즌이다. 새로운 외국선수가 왔고, KBL컵까지만 해도 기대감이 생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안 맞았다. 그럼에도 국내선수들은 맞춰주려고 했다. 다음 시즌부터는 적극성을 키워야 할 것 같다. 올 시즌도 더 잘할 수 있었는데….”
MVP 알바노 네가 고생이 많다
WORST 오쪽이 듀오의 대환장 콜라보
첫 시즌은 핑계라도 댈 수 있었지만…
고양 소노 19승 35패 승률 .352 8위
이 팀만큼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팀이 또 있을까. 창단 2년 차 시즌을 맞은 소노는 개막 전 다크호스로 꼽혔다. 주전 라인업의 무게감은 떨어졌지만, FA 시장에서 롤플레이어를 대거 영입하며 이정현을 위한 판을 깔아줬다. 시즌 중반에는 케빈 켐바오도 합류할 것으로 알려져 중위권 경쟁은 충분히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실제 소노는 2015-2016시즌 고양 오리온 이후 고양 연고 팀으로는 첫 개막 4연승을 질주하며 돌풍을 예고했다.
A매치 브레이크로 인한 휴식기를 갖기 전까지 5승 5패 5위에 올랐던 소노는 이후 급격히 무너졌다. 김승기 감독이 불미스러운 일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후 김태술 tvN SPORTS 해설위원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지만, 김태술 감독이 온전히 자신의 색깔을 주입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3연패 중이었던 소노는 김태술 감독 부임 후 8연패를 더해 창단 최다 11연패에 빠졌다.
소노는 이후 이렇다 할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정현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기간이 많아 힘겨운 연패 탈출-기나긴 연패라는 사이클을 반복했다. 많은 기대 속에 합류한 켐바오마저 데뷔 경기에서 발목 부상을 입은 소노는 앨런 윌리엄스가 시즌 도중 자리를 비우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대처가 미숙했다.
소노는 3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일찌감치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된 터였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성과였다. 시즌 내내 많은 시련을 겪었던 팀인지라 ‘유종의 미’란 표현을 쓰는 것도 부질없었는데, 소노는 시즌 종료 이틀 만에 또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4월 15일 오후 5시 김태술 감독 경질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사실 김태술 감독과 소노가 불편한 동거 중이라는 건 시즌 막판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떠돈 ‘불

편한 진실’이었다. ‘그래도 계약기간이 3년이나 남았는데?’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최연소 감독으로 화제를 모았던 김태술 감독은 결국 44경기 14승 30패 승률 .318에 그치며 씁쓸히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정규리그 최종전 직후, 김태술 감독의 코멘트
“플레이오프에 못 올랐지만, 마지막 경기를 어떻게 마치느냐는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데에 큰 차이가 있다. 끝까지 따라붙는 경기가 여러 차례 나와야 봄 농구도 할 수 있다. 오프시즌은 수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겠다고 느꼈다. 전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인 수비가 미흡했다. 뺏으러 나가는 수비는 익숙한데 끝까지 끈질기게 따라붙는 수비가 부족했다. 선수들이 어떻게 하면 이 수비를 잘할 수 있을지 연구할 생각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바라는 빠른 농구를 주입할 수 있도록 선수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발전하고 싶다.”
MVP ‘위닝 팀에서 한순간 하위권으로’ 이재도. 국내선수 중 유일한 전 경기 출전
WORST 수건
한 시즌 만에 다시 ‘동네 슈퍼’로
부산 KCC 18승 36패 승률 .333 9위
타일러 데이비스가 시즌 개막을 나흘 앞두고 퇴출 됐을 때만 해도, 최준용과 송교창의 개막전 출전이 불발됐을 때만 해도 모두가 예상했을 것이다. KCC의 타이틀 방어전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런데 KCC가 밑에서 두 번째 순위로 시즌을 마칠 거라 예상한 이도 있었을까. DB에 이어 KCC까지. 서로 다른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팀이 차기 시즌에 나란히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건 2018-2019시즌 DB와 SK에 이어 역대 두 번째였다.
개막 전 KCC의 불안 요소는 부상, 코칭스태프와 외국선수의 불화였다. 애석하게도 KCC로선 일어나지 않길 바랐던 최악의 시나리오 두 가지가 모두 터졌다. 최준용(17경기), 송교창(8경기)이 함께 뛸 때의 위력은 2023-2024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충분히 증명됐으나 선수는 코트에 있어야 가치가 빛나는 법. 이들은 도합 25경기를 소화하는 데에 그쳤다. 분투하던 허웅(39경기)도 시즌 막판에는 자리를 비운 날이 많았다. ‘슈퍼팀’ 멤버 가운데 유일하게 전 경기를 소화한 이승현의 체력이 멀쩡할 리 없었다.
뿐만 아니다. 론데 홀리스 제퍼슨, 알리제 존슨에 이어 디온테 버튼도 전창진 감독과 트러블을 일으켜 계륵으로 전락했다. 정관장과의 트레이드로 영입한 캐디 라렌의 ‘오픈빨’마저 바닥을 드러내자, KCC는 기나긴 터널을 마주해야 했다. 4라운드부터 5라운드 막판에 이르기까지 현대 시절 포함 팀최다인 12연패 수렁에 빠졌고, 대체 외국선수 도노반 스미스는 오히려 리온 윌리엄스를 그립게 만들었다.
KCC는 5~6라운드 통틀어 3승에 그쳤고,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팀 최초로 EASL(동아시아 슈퍼리그) 파이널포에 진출하지 못한 팀에 머물기도 했다. 그렇게 ‘슈퍼팀’ KCC는 한 시즌 만에 다시 ‘동네 슈퍼’로 전락했다. 올 시즌 KCC가 농구계에 준 교훈은 간단명료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정규리그 최종전 직후, 전창진 감독의 코멘트
“시즌이 정규리그에서 끝났다. 부산 팬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KCC가 다음 시즌에는 좋은 팀으로 변모해서 부산 팬들에게 즐거움을 드릴 것을 약속한다. 앞으로도 KCC에 많은 사랑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
MVP 아이러니하게도 효자 외국선수는 리온 윌리엄스였다
WORST ‘슈퍼팀’ 4인방이 모두 출전한 건 고작 7경기
‘서울의 봄’은 도대체 언제?
서울 삼성 16승 38패 승률 .296 10위
애석하게도 삼성에겐 무의미한 시즌이 반복됐다. 올 시즌 역시 성적도, 성장도,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 단 하루도 5할 승률을 찍어본 적이 없는 팀은 정관장, 삼성 단 두 팀이었다. 그나마 정관장은 트레이드와 외국선수 교체 등 발 빠른 정비를 통해 플레이오프에 올랐지만, 삼성은 또 1년을 낭비한 셈이 됐다. KBL 최초 4시즌 연속 10위라는 불명예를 썼다.
단추는 오프시즌부터 잘못 꿰었다. 김효범 신임 감독이 큰 기대를 걸었던 FA 이적생 이대성이 시즌 개막을 앞둔 시점서 십자인대 부상을 입으며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가드진이 줄 부상을 입은 KBL컵에서는 상대의 압박수비에 하프코트를 넘어오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삼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즌 초반 1옵션 코피 코번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그나마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동선이 해결된 이원석이 2라운드 평균 16점 8리바운드 1.1블록슛으로 활약했고, 최성모의 기량도 마침내 만개했다.
삼성은 3라운드 막판부터 4라운드 초반에 걸쳐 4연승하며 탈꼴찌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는 듯했지만, 4연승이 마침표를 찍은 직후 7연패를 당하며 익숙한 위치로 돌아갔다. ‘마지막 자존심’이 걸렸던 6라운드에는 단 1승에 머물렀고, 9경기 평균 득실점 마진이 -13.4점에 달하는 등 경기 내용도 좋지 않았다.
코번이 손가락 부상(이라 쓰고 태업이라 읽는다)을 이유로 결장한 정규리그 막판 마지막 홈경기를 치른 KCC에 재를 뿌리며 지난 시즌보다 2승 늘어난 16승으로 시즌을 마쳤지만, 어느 구석도 위안 삼을 수 없는 시즌이었다. 삼성은 시즌 종료 후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다. 지도자로 굵직한 경력을 쌓은 임근배 전 삼성생명 감독을 단장으로 임명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정규리그 최종전 직후, 김효범 감독의 코멘트
“선수들은 마지막 경기까지도 최선을 다해 뛰어줬다. 끝까지 열심히 임해준 선수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팬들에게는 당연히 너무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잘 준비해서 다음 시즌에는 강팀으로 거듭나겠다.”
MVP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니
WORST 젊은 선수들이 성장이라도 했다면….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박상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