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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뉴스
[뉴스][매거진] 한 끗 차에 갈린 운명, 역대급 6위 경쟁의 추억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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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점프볼=최창환 기자] 안양 정관장의 2024-2025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은 가히 ‘역대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극적이었다. 정규리그 마지막 날 6위 경쟁 중이었던 원주 DB를 꺾으며 플레이오프의 한 자리를 꿰찼다. 2024-2025시즌 정관장이 선사한 감동에 비할 순 없겠지만, 한 끗 차로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가 결정됐던 시즌은 종종 있었다. 어떤 팀들이 6위 경쟁에서 울고 웃었을까.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5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다
나란히 막내 구단으로 KBL에 합류, 창단 초기 하위권을 전전했던 서울 SK(당시 청주 SK)와 달리 창원 LG는 비교적 빠르게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창단 첫 시즌이었던 1997-1998시즌 정규리그 준우승을 차지했고, 1998-1999시즌에도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조상현 감독 부임 후 매 시즌 최소 실점 1위에 올랐듯, 초창기 LG의 팀컬러 역시 끈끈한 수비였다. 창단 첫 시즌 최소 실점 2위에 올랐고, 1998-1999시즌에는 KBL 출범 후 처음으로 70점대 실점(평균 78실점)의 문을 열었다.

물론 농구는 상대보다 1점이라도 더 높은 득점을 올려야 이기는 스포츠다. 수비가 팀 컬러라 해도 해결사는 존재하는 법. 초창기 LG의 공격은 버나드 블런트가 도맡았다. 신장은 188cm에 불과했지만, 블런트를 활용한 아이솔레이션은 LG의 치트키나 다름없었다. 많은 팀이 블런트를 봉쇄하기 위해 더블팀, 상황에 따라 장신 선수까지 활용한 트리플팀을 썼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블런트는 1997-1998시즌 평균 25.4점, 다음 시즌 29.9점을 기록하며 LG가 강호로 도약하는 데에 앞장섰다.

창원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블런트는 한순간 ‘금지어’로 전락했다. LG는 해외 팀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던 블런트와 1999-2000시즌에도 재계약을 맺었지만, 그는 시즌 개막을 불과 6일 앞두고 야반도주했다. 이중계약을 맺은 미국의 하부리그 IBL 트렌트 슈팅스타즈 소속으로 시즌을 치르기 위해 말도 없이 LG를 떠난 것.

“오전 운동에 안 나온 적이 몇 번 있어서 그러려니 했다. 방에서 TV 소리도 들려 의심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당시 신인이었던 (이)홍수에게 차를 빌려달라고 해서 직접 공항까지 운전해서 갔더라.” 당시 동료 박훈근의 회고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LG는 마일로 브룩스를 대체 외국선수로 영입했지만, 블런트의 공백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박훈근은 “블런트 대신 온 녀석(브룩스)도 가관이었다. 감독님께 주먹질을 하질 않나…. 어휴. 어느 날은 훈련 중 텅 빈 관중석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서 뭐햐나고 물으니까 ‘얼마 전 죽은 형이 와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하더라. 정말 뭔가를 본 것인지, 운동이 하기 싫었던 것인지…”라고 말했다.

LG는 팀 최다인 9연패에 빠지는 등 1999-2000시즌 내내 블런트 공백을 실감했다. 4, 5라운드에 연달아 5승씩 챙기며 6강 경쟁에 참전하는 듯했지만, 결국 6위 부산 기아(현 울산 현대모비스)에 1경기 뒤진 7위로 시즌을 마쳐 창단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이충희 감독도 시즌 종료 후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29승이나 거두고도 눈물
2006-2007시즌까지 1경기 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사례는 종종 있었다. 앞서 언급한 LG를 비롯해 2000-2001시즌 원주 삼보(현 DB) 역시 1경기 차로 대전 현대(현 부산 KCC)에 6위 자리를 내줬다. 덕분에 드래프트 1순위 확률 25%를 획득, 김주성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6위와 동률을 이루고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팀은 2007-2008시즌에 처음 나왔다. 불운의 주인공은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창단 첫 시즌이었던 2003-2004시즌에 4강까지 올랐지만, 이후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그치는 등 암흑기를 걸었던 전자랜드는 2006-2007시즌에 최희암 감독을 영입하며 전력을 개편했다. 비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이전 시즌 대비 15승이나 더 챙기며 기대감을 심어줬던 전자랜드는 2007 신인 드래프트 4순위로 정영삼을 지명하며 마침내 플레이오프 컨텐더로 거듭났다.

부활한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테런스 섀넌까지 지명한 전자랜드는 2007-2008시즌 1라운드만 3승 6패에 그쳤을 뿐, 2라운드부터는 꾸준히 승수를 쌓았다. 부상을 털고 돌아온 섀넌과 정영삼이 기대에 걸맞은 화력을 과시했고, 트레이드로 영입한 리온 트리밍햄도 ‘왕년의 득점왕’ 포스를 뽐냈다. 전자랜드의 최종 성적은 29승 25패 승률 .537. 예년이었으면 충분히 플레이오프의 한 자리를 꿰찼을 성적이었다. 바로 한 시즌 전 6위의 승률이 .463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전자랜드의 앞길을 가로막은 팀은 SK였다. LG가 비교적 빨리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 지은 반면, SK와 전자랜드는 시즌 막판 치열하게 6위 경쟁을 펼쳤다. SK는 6라운드 초반 5할 승률이 무너지며 위기를 맞은 것도 잠시, 무릎부상을 털고 돌아온 방성윤과 함께 시즌 막판 가파르게 승수를 쌓았다. SK는 6라운드를 5연승으로 마무리했고, 일찌감치 ‘플레이오프 모드’에 돌입한 LG는 4연패로 정규리그를 마쳤다. 이들의 전적은 전자랜드와 같은 29승 25패였다.

결국 6위는 사상 초유의 타이 브레이크 룰에 의해 결정됐다. KBL은 세 팀 이상의 승률이 같으면, 해당 팀 간의 승패를 계산해 최종 순위를 가린다. SK는 LG, 전자랜드를 상대로 총 7승 5패를 기록했다. 이어 LG가 6승 6패를 거둔 반면, 전자랜드는 두 팀을 상대로 5승 7패에 머물렀다. 6위 경쟁의 분수령이었던 6라운드 초반 SK와의 맞대결에서 93-96으로 패한 게 결과적으로 어마어마한 스노우볼이 되었던 것.

전자랜드는 정규리그 마지막 날 KCC를 꺾었지만, 타이 브레이크 룰에 의해 29승이나 따내고도 플레이오프에 못 오르는 불운의 팀이 됐다. 정영삼은 이 경기에서 플레이오프 탈락의 울분을 표출이라도 하듯 덩크슛을 터뜨리며 포효했다.

정영삼은 “기회가 되면 덩크슛을 시도하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었다. ‘분노의 덩크슛’이라고 표현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사실은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보여준 덩크슛이었다. 물론 나도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덩크슛이 될 줄은 몰랐다”라며 돌아봤다.

“팬들이 외면하는 플레이오프, 의미 있겠나?”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을 뿐, 이기는 데에 익숙해졌던 전자랜드는 2008-2009시즌에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였다. 신인 강병현에게 1번 역할은 맞지 않는 옷이었고, 경기를 거듭할수록 높이 열세도 뚜렷해졌다.

전자랜드는 KCC와의 빅딜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하승진이 입단, 출전시간과 역할에 대한 불만이 컸던 서장훈을 영입한 것. 전자랜드는 강병현, 조우현, 정선규를 넘겨줬고, 당시 최희암 감독이 남겼던 “어음(강병현) 대신 현찰(서장훈)을 받았다”라는 코멘트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농구계 명언 가운데 하나다.

한때 승패 마진 -6을 기록할 정도로 불안정한 전력을 보여줬던 전자랜드는 시즌 막판 16경기에서 12승 4패 승률 .750을 기록, 플레이오프 막차에 탑승했다. 2008-2009시즌 역시 전자랜드의 전적은 29승 25패였다.

1년 전 타이 브레이크 룰에 울었던 전자랜드였지만, 2008-2009시즌만큼은 웃었다. 2008-2009시즌 역시 전자랜드를 포함해 총 세 팀이 29승을 거두는 등 치열한 중위권 경쟁이 펼쳐졌다. 이 시즌에 불운을 겪은 팀은 안양 KT&G(현 정관장)였다.

2007-2008시즌에 런&건을 앞세워 4강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던 KT&G는 2008-2009시즌 초반까지 단단한 면모를 이어갔다. 시즌 개막이 임박한 시점에 유도훈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는 악재가 있었지만, 주희정과 마퀸 챈들러를 앞세운 KT&G의 화력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었다. 2옵션 캘빈 워너 역시 팀컬러에 부합하는 경력자였다. KT&G는 시즌 개막 후 11경기에서 8승을 따내며 1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고, 이후 꾸준히 중상위권에서 순위 경쟁을 이어가며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다가가는 듯했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 KT&G에 예기치 않은 악재가 닥쳤다. 워너가 마약 파문에 휘말린 것. 워너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KT&G는 재판 및 KBL 재정위원회 결과가 나오기 전 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시즌 종료까지 10경기 남겨둔 시점서 워너의 퇴출을 결정했고, 워너를 대신해 신입 토마스 패얼리가 KT&G에 합류했다. 당시만 해도 외국선수 2명의 동시 출전이 가능했던 터라 검증된 외국선수를 퇴출하는 건 팀 전력에 직격탄이나 다름없었지만, KT&G는 승리 이상의 가치에 무게를 뒀다.

당시 KT&G의 일원이었던 관계자는 “프로농구는 각 팀들이 스스로 지켜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이상범 감독대행이나 선수들에겐 미안했지만, 눈앞에 있는 이익 때문에 제 살을 깎아 먹을 순 없었다. 팬들에게 외면받는 플레이오프 진출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었다”라고 회고했다.

KT&G는 갑작스러운 외국선수 교체에도 6라운드에 6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 경쟁을 이어갔으나 LG, 전자랜드와의 타이 브레이크 룰에서 밀려 29승을 따내고도 플레이오프에 못 오른 두 번째 팀이 됐다.

비록 ‘봄 농구’에 초대받지 못했지만, KT&G의 런&건을 이끌었던 주희정의 활약까지 빛이 바랜 건 아니었다. 주희정은 데뷔 12년 차 시즌에 15.1점 3점슛 1.9개 4.8리바운드 8.3어시스트로 활약했으며, 모두 커리어하이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주희정은 이와 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MVP 투표에서 유효투표수 80표 중 53표를 획득, 15표에 그친 함지훈(현대모비스)을 여유 있게 제치며 생애 첫 정규리그 MVP로 선정됐다. 이는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플레이오프 탈락 팀 소속 선수의 정규리그 MVP 수상으로 남아있다.

유례없는 촌극, ‘네가 가라 6강’
2012-2013시즌은 KBL 출범 후 가장 사건, 사고가 많았던 시즌으로 회자되고 있다. 특히 한국 농구 포인트가드 계보를 논할 때 첫손에 꼽혔고, 원년 시즌 정규리그 MVP의 영예까지 누렸던 강동희 당시 동부 감독이 승부 조작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져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6위 싸움 역시 프로답지 못했다. 2013 신인 드래프트는 경희대 BIG.3 김종규, 김민구, 두경민이 나란히 참가하는 드래프트로 기대를 모았다. 3명 모두 당장 프로에서 통할 수 있는 실력을 보여준 데다 고려대 주장 박재현 역시 로터리픽 후보로 꼽힌 유망주였다.

2012-2013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팀은 가장 높은 1순위 확률인 23.5%를 손에 쥘 수 있었다. NBA는 탱킹도 팀이 선택할 수 있는 노선 가운데 하나(물론 팬들의 비난도 감수해야겠지만)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 KBL은 구조상 외국선수만 잘 데려오면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릴 수 있는 리그다.

이로 인해 탱킹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고, 팀들 역시 공식적으로 “미래를 위해 시즌을 포기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실제 현주엽이 참가하는 1998 신인 드래프트 1순위 확률을 높이기 위해 4쿼터에 외국선수 2명을 모두 투입하지 않았던 삼성 김현준 감독대행은 “경기를 불성실하게 치렀다”라는 이유로 KBL로부터 2경기 출전정지, 벌금 100만 원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2012-2013시즌 일부 팀들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마치 ‘네가 가라 6강’이라며 양보라도 하듯 전력을 다하지 않는 팀이 속출했다. 경희대 BIG.3를 손에 넣을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 참신한(?) 전략도 동원했다. 한 팀은 2쿼터에 개인 최다 19점을 퍼부은 주전을 “훈련할 때 아킬레스건 통증을 호소했던 터라 출전시간 조절이 필요했다”라며 후반 내내 기용하지 않았고, 또 다른 팀의 감독은 중계방송사 인터뷰에서 1순위 경쟁(?) 중인 상대 팀을 향해 “경기 치르는 걸 보니 이길 마음이 없는 것 같다”라며 미묘한 감정싸움을 했다.

이 와중에 프로다운 자세를 보여줬던 팀이 삼성이었다. 2011-2012시즌 13승에 그치는 굴욕을 맛봤던 삼성은 9년 만에 돌아온 김동광 감독과 함께 플레이오프 복귀를 목표로 내걸었다. 이전 시즌에 비해 이렇다 할 전력 보강이 없어 승리에 익숙해지진 못했지만, 삼성은 앞서 언급한 팀들과 달리 외국선수 교체와 트레이드 등으로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삼성은 6라운드 초반 9위로 내려앉는 위기를 거쳐 마지막 6경기에서 4승을 수확, 6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삼성의 2012-2013시즌 전적은 22승 32패 승률 .407. 8구단 21경기 체제였던 원년 시즌을 제외하면 플레이오프 진출 팀들 가운데 가장 낮은 승률이었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일부 팀들과 달리 삼성은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해 임했다는 측면에서 팬들의 지지를 얻었다. 공교롭게 동부, LG, KT는 나란히 20승으로 시즌을 마쳤다.

하늘도 삼성의 진심을 알아줬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삼성은 2013 신인 드래프트 1~4순위 확률이 1.5%에 불과했지만, 추첨을 통해 4순위 지명권을 손에 넣었다. 김동광 감독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아니겠는가”라며 호탕하게 웃었고, 박재현을 선발했다. 반면,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KT는 5순위로 미끄러졌고, KT 관계자들의 망연자실한 표정은 김동광 감독의 미소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여기서 또 하나의 반전. 5순위에 머문 KT가 선발한 선수가 바로 이재도였다. 박재현이 기대만큼의 성장세를 그리지 못한 반면, 이재도는 KT에서 2년 차 시즌에 올스타로 선발되는 등 비교적 빠르게 가치를 증명했다.

이재도는 “나도 같은 신인인데 반겨주지 않는 분위기여서 한편으로 주눅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그런 상황으로 인해 오기가 생겼다. ‘보여줘야지’라며 각오를 새겼고, 첫 오프시즌을 잘 보낸 덕분에 이후 반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기자), KBL PHOTOS